
지장신앙과 선불교 전통이 어우러진 선운사 성보가 서울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국보 1건과 보물 11건을 포함한 총 81건 157점 규모로,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지장보살의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마련됐다.
특별전 ‘도솔산 선운사-선(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가 4월 22일부터 7월 31일까지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 자리한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관장 서봉 스님)과 제24교구본사 선운사(주지 경우 스님)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에는 선운사 본·말사 성보를 비롯해 송광사, 용문사, 불암사와 동국대 박물관·도서관, 호림박물관, 아모레퍼시픽, 불교천태박물관, 운허기념박물관 등 여러 사찰과 기관 소장 유물이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 개막식은 4월 21일 오후 2시 열린다.

선운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장도량으로 꼽히는 사찰이다. 선운사 성보로 꾸려진 1전시실에서의 백미는 단연 ‘삼지장보살상(三地藏菩薩像)’이다. 보물 ‘선운사 지장보궁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참당암 지장전 석조지장보살좌상’, 보물 ‘도솔암 내원궁 금동지장보살좌상’이 사찰 창건 이래 처음으로 한 공간에 모였다.

고려후기에서 조선초기에 조성된 이들 보살상은 각각 독존으로 봉안됐는데, 이는 매우 드문 사례로 불교조각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금동과 석조의 질감 속에 드러나는 단정한 비례감과 깊은 시선은 지장보살 특유의 엄숙함과 장엄함을 전한다. 고요한 공간 속, 모든 중생의 제도를 위해 성불을 미룬 지장보살의 서원이 묵직하게 환기된다. 서로 다른 도량에서 중생을 살피던 세 보살을 한자리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관람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지장신앙뿐 아니라 선운사는 조선후기 선불교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하다. 백파긍선(1767~1852) 스님과 초의의순(1786~1866) 스님의 인연이 깃든 곳으로, 백파 스님이 ‘선문수경’에서 근기에 따른 선수행 단계를 세 갈래로 체계화하자 초의 스님은 ‘선문사변만어’를 통해 선의 본질에는 차별이 없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가세하면서 논쟁은 약 100년간 이어졌다. 이러한 선리 논쟁은 조선후기 선불교의 이론적 지평을 넓힌 사건으로 평가된다. 전시에서는 김정희가 쓴 백파 스님 비문 탁본과 초의 스님 진영을 비롯해 ‘선문수경’과 ‘선문사변만어’도 함께 공개된다.





2전시실은 선운사 말사 성보를 중심으로 꾸며졌다. 이 가운데 국보 ‘부안 내소사 동종’이 눈길을 끈다. 1222년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는 동종은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입상연판문대와 삼존상 배치, 네 개의 당좌 등 세부 표현은 치밀하면서도 유려해, 고려 불교미술 특유의 섬세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공중에 흩날리는 천개 표현과 조형감은 당대 장인의 높은 기술과 미적 완성도를 잘 드러낸다.


이와 함께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부안 개암사 대웅전 목조제화갈라보살좌상’이 독립된 공간에서 전시된다. 1656년 조성된 이 불상은 높이 164cm에 이르는 대형 목조상으로, 큼직한 보관과 섬세하게 겹겹이 얹힌 장식이 어우러져 장중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단한 비례감 속에 드러나는 온화한 표정은 조선후기 불상의 안정된 미감을 보여준다.


같은 공간에 전시된 5점의 ‘개암사 응진전 목조십육나한상’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나한상마다 서로 다른 표정과 몸짓 속에 익살스러움과 생동감이 살아나며, 관람객의 미소를 자아낸다.


이밖에도 ‘점찰선악업보경’, ‘감지은니 미륵삼부경’, ‘덕림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동자상’,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 및 사경보·포갑’ 등 선운사의 신앙과 수행 전통을 보여주는 다양한 성보가 공개된다.

4월 20일 특별전 라운딩에서 관장 서봉 스님은 “지난해 국제회의장 화재를 극복하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며 “지장신앙과 국난극복의 상징인 선운사 성보가 현대인에게 위로와 지혜의 빛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건태 기자 sky@beopbo.com

